본문 바로가기
수박겉핥기 리뷰/문화

곡성(哭聲) THE WAILING , 2016

by 해랑사야희 2016. 5. 21.


예고편만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영화 곡성. 영화가 개봉한 후 많은 리뷰들과 영화적 해석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낳고있습니다. 

퍼피는 오컬트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많은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곡성은 곳곳에 관객을 혼란시키는 영화적 장치와 종교적 메시지, 흐릿한 결말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계속적으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게 합니다.


이미 많은 리뷰들에서 자세한 해석과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데 퍼피는 퍼피만의 시선으로 수박겉핥기 리뷰를 하려고 합니다. 

영화적 해석에 대해 틀린점이나 과도한 해석이 있을수 있음을 미리 밝히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분들은 읽지않기를 추천합니다. 


그럼 스산한 분위기의 곡성으로 같이 떠나실까요?



영화의 제목이자 장소를 뜻하는 곡성의 사전적인 의미는 슬피 우는 소리를 뜻합니다.

슬피 우는 소리는 입으로 내는 울음이며 동시에 딸에 대한 종구의 처절한 몸부림을 뜻하는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곡성의 첫 도입부는 누가복음 24장의 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의심’에 대한 키워드는 영화내내 관객의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며 영화속에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영화에서 표현된 외지인에 대한 사소한 의심은 풍문으로 점점 더 큰 덩어리를 형성하며 입으로 전해지고 

그 과정에서 한집단(마을사람들)이 한 개인(외지인)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집단주의의 이기심을 표현합니다.



흔히 한 집단의 목표를 구성원의 목표보다 우선시하는 생활방식으로 서양식 집단주의를 표현하는데 

개인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집단주의는 그것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집단의 목표보다는 구성원들 간의 관계 유지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한국인은 집단의 목표보다는 집단 안에서 끈끈하게 연결되는 인간 관계를 더욱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집단주의는 영화에서 끈끈하게 연결된 마을안에서 전혀 모르는 외지인(불청객)이 등장하면서 

배타적인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영화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추측하건데 외지인이 오고나서 마을사람들은 신기하고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을것으로 생각됩니다. 더구나 일본사람이기때문에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런가운데 고라니를 생식으로 먹는다든지, 여성을 추행한다는 소문이 발생합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러한 소문은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증폭됩니다.



사건의 잔인함으로 마을사람들은(집단) 자신들은 아닐꺼라며 외지인을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는 독버섯이라는 소재로 사건을 바라보지만 마을사람들은 이미 외지인을 사건의 범인(의심)으로 생각합니다. 

그 의심은 점점 살이 붙으며 사실로 변해갑니다. 


우리는 종종 실체없는 말들이 전해지면서 본래의 진실이 흐릿해지며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네에 처녀가 임신을 했다더라. 처녀가 임신을 했으니 평소에 행동이 문란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처녀의 문란함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성폭행을 해서 임신을 한 것이였다. 

피해자인 처녀는 사회적 약자이지만 방치되고, 결국엔 진실은 사라지고 마을사람들에게 처녀는 문란한것으로 굳어집니다.



이렇듯 영화 곡성에서는 사실과 소문 사이에 의심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퍼피가 생각하기에  외지인은 처음에는 악마가 아닌것으로 보입니다. 

악마의 실체를 탐구하거나 일광과 같이 무당으로 추정됩니다. 


영화에서 ‘종구’(곽도원)와 마주친 장면에서 자신은 여행가이며, 

자신이 보고 느낀것을 말해도 믿지 못할꺼라는 장면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일광’(황정민)은 옛사람들이 바라보았을때 영적인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된 요즘은 사람들의 의심과 불안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존재로 보일것입니다. 

아마도 일광은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서서히 악마로 변해갔을 것입니다. 


이렇듯 곡성은 현대사회의 불안과 의심을 악마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영화는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급하게 출동하는 종구를 붙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가족누구도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않고 오히려 재미있는 일이 생긴것처럼 궁금해합니다. 


사건현장에 도착한 종구는 참혹한 사건현장에 몸서리를 치고, 동료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동료에게 사건에 대한 소문으로 외지인을 알게 된 종구. 

소문으로 접한 외지인을 의심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그의 행동을 주시합니다. 


사건현장에서 우연히 사건을 목격했다는 ’무명’(천우희)를 만난 종구는 악마로 변한 외지인의 환상(꿈)을 보게되고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종구의 딸’효진’(김환희)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프기 시작합니다.

종구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동료와 카톨릭 사제와 함께 외지인을 찾아갑니다.



그의 집에서 온갖 이상스러운 의식을 치룬 방과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피해자들의 사진과 물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건속에서 자신의 딸 효진의 물건을 발견하고 종구는 외지인을 용의자로 확신하게 됩니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외지인은 사람에서 악마로 변해가기 시작한것으로 보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힘든 소문과 그 소문의 이상스런 실체를 마주한 종구는 딸의 이상스런 변화에 혼란스러워하며 

무속인 '일광'(황정민)에게 굿을 의뢰합니다.



이때 외지인과 일광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것으로 추정됩니다. 

효진의 굿을 통해 교차편집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굿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된것으로 생각합니다. 

효진을 차지하기 위한 대결은 종구의 또 다른 의심으로 중단되고 외지인과 일광은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외지인은 어렴풋이 자신을 지켜보는 무명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고 자신보다 강한상대라는것을 직감하고 마을을 떠나려 합니다.



하지만 종구의 확신의 찬 의심은 폭력으로 변질됩니다. 

종구일행을 피해 도망치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며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외지인은 

무명의 공격과 종구의 폭력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고 비로써 악마로 완벽하게 변합니다.



한편 일광은 효진을 차지하기 위해 다시 종구의 집을 찾아가지만 무명과 맞닥뜨리고 겁에 질리며 마을을 떠납니다.

하지만 외지인이 힘을 갖게된것을 알게된(나방이 날아다니며 서울로 가지 못하게 한장면) 그는 다시 종구의 집으로 향합니다.



외지인(악마)을 죽임으로써 딸의 상태가 치료된것으로 생각한 종구는 무명과 다시 만나게 되고, 

의심과 두려움속에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그는 결국 무명을 의심하고 영화는 종구의 울음소리(곡성)를 관객에게 들려주며 끝을 맺습니다.


종구의 캐릭터는 관찰자로써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에게 답답함을 안겨줍니다. 

의심과 의심으로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종구는 딸을 위한 부성애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영화 말미에 경찰이라는 직업을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급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비현실적인 스산한 분위기에서 종구의 친구들은 비현실적으로 실소가 나게 그려지는데 

이또한 미련한 인간을 표현한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무명은 화면에 보이는 컷과 대사가 거의 없어 천우희라는 배우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에게 끈임없이 무명의 의미를 상상하게 합니다. 

미스터리하고 신비스러운 무명이 좀더 영화에서 표현되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악마로 변해버린 외지인은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종구일행에게 쫒기며 고통을 느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과 악마의 잔인한 분위기를 능수능란하게 표현하며 

실질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갑니다.


영화 곡성은 종교적인 소스와 영화적 기법은 차치하고 현대사회에서 관계단절과 불안감을 표현하고 싶었던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긴 런닝타임에도 촘촘한 그물로 관객의 몸을 옭아매면서 

긴장감있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매우 모호하게 끝을 맺습니다.


 


무언가 그 뒷이야기가 있을거 같은 느낌으로 카메라를 훑어보다 급작스럽게 자막이 올라가는데 

무언가 특정한 결말을 원한건 아니지만 시야를 가리는 안개처럼 답답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 답답함은 아마도 결국 의심과 불안으로 나약해져버린 현대사회의 사람들에게 희망보다는 

결국은 불행하게 될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종교적인 지식과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헷갈리게 장치한 소스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내용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곡성. 

나홍진 감독의 다음영화를 기다리며 수박겉핥기 리뷰 마치겠습니다.



총평 ★★★☆☆

의도적인 모호함과 결말은 논란과 더불어 별하나를 앗아갔다.











반응형

댓글